
조지 칼 탄츨러(Georg Carl Tänzler, 1877년 2월 8일 ~ 1952년 7월 3일)는 독일 태생의 미국인으로,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위치한 미 해양병원(Marine Hospital Service)에서 방사선 기사로 근무했다. 그는 스스로를 카를 폰 코젤 백작(Count Carl von Cosel)이라 불렀으며, 한 젊은 여성 환자에게 집착하다가 미국 범죄사에서 가장 기이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남게 된다.

그의 집착 대상은 쿠바계 미국인 여성 마리아 엘레나 밀라그로 데 오요스(1909~1931)였다. 문제는 이 집착이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탄츨러는 엘레나가 죽은 지 약 2년이 지난 1933년, 그녀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자신의 집으로 옮겼고, 이후 약 7년간 시신과 함께 생활하다가 1940년에 발각된다.
어린 시절과 방랑의 삶
탄츨러는 1877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카를 탄츨러 혹은 게오르크 카를 탄츨러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그는 독일을 떠나 인도, 호주 등지를 떠돌며 방랑 생활을 했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호주에 머물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독일계라는 이유로 호주 당국에 의해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직접 배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전쟁이 끝난 뒤 독일로 돌아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네덜란드로 이주해 결혼했고 두 딸을 두었지만, 그중 한 명은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이후 가족은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해 키웨스트에 정착한다.

백작부인의 환영
탄츨러는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한 여인의 환영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존재를 18세기 독일 귀족 여성 안나 콘스탄티아 폰 브록도르프, 일명 ‘코젤 백작부인’이라 믿었다. 탄츨러는 이 환영이 죽은 조상으로부터 온 메시지이며, 자신의 운명적 사랑을 인도하는 존재라고 확신했다.
이 환영 속 여성은 항상 검은 머리를 가진 이국적인 미인의 모습이었고, 탄츨러는 언젠가 현실에서 이 여인을 만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는 이 믿음을 근거로 스스로를 ‘카를 폰 코젤’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엘레나 오요스와의 만남
1930년 4월 22일, 키웨스트 해양병원에서 근무하던 탄츨러는 결핵 진단을 받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은 엘레나 오요스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녀를 보는 순간, 자신이 평생 꿈속에서 보아온 바로 그 여인이라고 확신했다.
엘레나는 지역 사회에서 미인으로 알려진 인물이었으며, 시가를 만드는 노동자 집안 출신이었다. 이미 결혼한 상태였지만 남편은 그녀가 유산을 겪은 뒤 곧 떠났고, 법적으로만 혼인 관계가 유지된 상태였다.

병과 집착
엘레나는 당시 치명적이던 결핵 진단을 받았고, 탄츨러는 의료인의 역할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엑스레이 장비와 각종 민간요법, 약물 치료를 동원해 엘레나를 치료하려 했고, 그녀의 집까지 찾아가 의료 행위를 이어갔다.
또한 보석과 옷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했지만, 엘레나가 이에 응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녀는 1931년 10월 25일, 부모의 집에서 결국 결핵으로 사망했다.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다
탄츨러는 장례 비용을 전액 부담했고, 가족의 허락을 받아 지상 묘를 건설했다. 이후 거의 매일 밤 묘지를 찾아가 엘레나의 무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1933년 4월 어느 날 밤, 그는 몰래 묘지를 찾아가 엘레나의 시신을 꺼냈다. 장난감 손수레에 시신을 싣고 어둠 속에서 자신의 집으로 옮겼다. 그는 엘레나의 영혼이 자신에게 “무덤에서 데려가 달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시신과의 동거
탄츨러는 시신의 뼈를 피아노 철사로 연결했고, 유리 눈을 끼웠다. 피부가 썩자 밀랍과 석고를 섞은 천으로 대체했고, 빠진 머리카락은 생전에 얻어둔 엘레나의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씌웠다. 시신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몸속에 헝겊을 채워 넣고, 향수와 소독제를 대량 사용했다.
그는 엘레나의 시신을 침대에 눕히고, 옷과 장신구를 입힌 채 함께 생활했다.
발각과 논란
1940년, 엘레나의 언니 플로리다는 탄츨러가 시신과 함께 지낸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집을 찾아갔고, 결국 시신은 발견되었다. 탄츨러는 체포되었으나 정신 감정 결과 재판을 받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었고,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는 취하되었다.
시신은 장례식장에 공개 전시되었고, 무려 6,800명이 이를 보러 몰렸다. 이후 재매장되었으나, 다시는 훼손되지 않도록 비밀 장소에 무명으로 묻혔다.
사후의 삶과 죽음
탄츨러는 이후 엘레나의 데스 마스크를 바탕으로 실물 크기의 인형을 만들어 함께 살았다. 그는 1952년 75세로 사망했고, 사후 몇 주가 지나서야 시신이 발견되었다.
일부 기록에서는 그가 엘레나의 인형을 끌어안은 채 발견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공식 부고에는 악기 옆 바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 사건은 이후에도 잡지와 연구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반복적으로 재조명되었으며, 집착·사랑·광기·죽음이 뒤엉킨 실화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