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일본 나고야시는 한동안 지워지지 않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지나치게 잔혹하고 기괴한 이 사건은,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범죄였다. 훗날 이 사건은 범인의 이름을 따 마스부치 쿠라요시 사건이라 불리게 되었고, 목 없는 처녀 사건(首なし娘事件)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닭똥 처리장에서 발견된 시신
1932년 2월 8일. 지금의 나고야시 나카무라구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던 닭똥 처리장에서 젊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시신은 이미 심하게 부패해 있었으나,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부패가 아니었다.
시신에는 목이 없었다. 단순히 잘린 정도가 아니었다. 목은 완전히 사라졌고, 유방과 성기, 배꼽까지 도려내진 상태였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조차도 그 처참한 광경 앞에서 말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공포는 과장 없이 현실이 되었다. 시신은 즉시 나고야 의대로 옮겨져 부검이 이루어졌다. 부검 결과와 함께, 현장에 남아 있던 소지품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은 이와타 마스에, 당시 19세의 젊은 여성으로 확인되었다.

용의자로 떠오른 남자, 마스부치 쿠라요시
경찰은 곧 피해자의 주변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한 남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화과자 장인이었던 마스부치 쿠라요시, 당시 43세였다. 그는 피해자 마스에와 내연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러 정황을 종합한 경찰은, 마스부치가 1932년 1월 22일 전후에 마스에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곧바로 지명수배가 내려졌지만, 정작 마스부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도주인지, 자살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사라진 머리의 발견
사건 발생 사흘 뒤인 2월 11일. 키소가와 강가에서 마스에의 머리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마치 가발을 벗기듯 두피째 벗겨져 있었고, 안구는 사라진 상태였다. 아래턱은 날붙이로 훼손된 흔적이 역력했다.
몸통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던 사건은, 이로써 한층 더 괴기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사람들은 단순한 살인을 넘어선 집착과 광기의 범죄를 직감했다.

또 하나의 시신,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
그리고 한 달 뒤인 3월 5일. 머리가 발견된 장소 인근의 한 찻집에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별채를 청소하려던 주인이 문을 열려 했으나, 안에서 잠겨 있어 이상함을 느끼고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목을 맨 중년 남성의 시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 모습이었다. 남성의 머리에는 긴 머리카락이 붙은 여성의 머리가죽이 가발처럼 씌워져 있었고, 여성용 팬티와 브래지어 위에 검은 양복을 걸친 기괴한 차림이었다. 발에는 고무장화가 신겨져 있었다.
현장 인근에서는 여성의 지갑과 냉장고가 발견되었다. 지갑 속 부적 안에는 사람의 안구가 들어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잘려나간 유방, 성기, 배꼽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시신의 정체는 다름 아닌, 행방불명되었던 범인 마스부치 쿠라요시였다.

집착과 신앙, 그리고 파멸
마스부치는 1889년 군마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유난히 신불과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강한 인물이었다. 화과자 장인이 되어 도쿄 아사쿠사에서 가게를 열고 결혼해 자식까지 두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가게도, 아내도, 아이들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후 그는 떠돌다시피 하며 나고야에 정착했고, 츠야라는 여성과 함께 살림을 차렸다.
츠야가 운영하던 재봉교실에 다니던 처녀들 중 한 명이 바로 이와타 마스에였다. 병약했던 츠야는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했고, 그녀의 시신은 의대에 기증되었다. 마스부치는 그 해부 과정을 아무런 동요 없이 지켜보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마스부치는 마스에와 깊은 관계로 빠져들었고, 점차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는 “사랑을 완성하려면 함께 죽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마스에는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 순간, 그의 사랑은 집착으로, 집착은 분노로, 분노는 살의로 변했다.
결말
마스부치는 결국 마스에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시신을 훼손한 뒤, 자신 역시 기괴한 방식으로 자살했다.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다고 믿었을지 모르나, 남은 것은 공포와 혐오뿐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4년 뒤 벌어진 아베 사다 사건과 종종 비교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독점과 파멸. 다만 이 사건은, 그 끝마저도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광기로 남았다.
1932년 나고야의 이 살인사건은, 지금도 일본 범죄사에서 가장 기괴하고 불쾌한 악몽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간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지워지지 않는 사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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