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한국미제사건

  • 오창 맨홀 변사사건 자살인가 타살인가

    오창 맨홀 변사사건 자살인가 타살인가

    오창 맨홀 변사사건은 지금 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많은 장면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한 변사 사건이 아니라, 경찰 수사 자체가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으로 자주 거론된다.

    오창 맨홀 변사사건 현수막
    오창 맨홀 변사사건 실종신고 현수막

    사건은 2010년 2월 충북 오창의 한 야산에서 시작된다. 등산객이 맨홀 위를 덮은 돗자리와 돌을 이상하게 여기고 치웠다가, 맨홀 안에 목이 매달린 채 숨져 있는 한 남성을 발견한다. 시신은 마치 교수형을 당한 것처럼 맨홀 아래에 달려 있었고, 양손은 뒤로 결박된 상태였다. 현장 모습만 놓고 보면 누가 봐도 섬뜩하고 비정상적이었다. 게다가 숨진 사람은 며칠 전 공사대금을 받으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긴 40대 건축업자였다.

    시신 발견 당시 맨홀 뚜껑에 끈이 묶여 있는모습(출처: SBS 방송 캡쳐)
    시신 발견 당시 맨홀 뚜껑에 끈이 묶여 있는모습(출처: SBS 방송 캡쳐)

    더 이상한 건 그가 사라진 뒤의 동선이었다. 피해자는 안산으로 돈을 받으러 간다고 했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시 오창 쪽으로 돌아온다. CCTV에는 짧으면 몇 분이면 될 구간에서 이상하게 시간이 비는 장면도 잡혔다. 그 사이 휴대전화 배터리는 분리된 채 꺼졌고, 나중에는 부서진 상태로 발견된다. 누가 왜 휴대전화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이미 평범한 자살 사건과는 결이 달라진다.

    오창 맨홀 변사사건 담당 형사(출처: SBS 방송 캡쳐)
    오창 맨홀 변사사건 담당 형사(출처: SBS 방송 캡쳐)

    경찰은 초반에는 타살 가능성을 의심했다. 현장만 보면 그렇게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자 분위기는 바뀐다. 경찰은 피해자가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렸고 보험금을 염두에 둔 위장 자살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시작한다. 반면 유족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살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정황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2010년 2월3일 출근시 방한화를 신었던 최씨가 같은날 밤 11시 경 오창읍 편의점 내에선 구두를 신고 있는 모습(출처: SBS 방송 캡쳐)
    2010년 2월3일 출근시 방한화를 신었던 최씨가 같은날 밤 11시 경 오창읍 편의점 내에선 구두를 신고 있는 모습(출처: SBS 방송 캡쳐)

    대표적인 게 편의점 CCTV 장면이다. 피해자는 집을 나설 때 방한화를 신고 있었는데, 사건 당일 밤 편의점에서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가족 말에 따르면 그는 평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나 쉽지 않은 약속에 나갈 때 구두로 갈아신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즉, 누군가를 만나러 갔거나 이미 누군가와 함께 있었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그는 편의점 안에서도 바깥의 불빛이나 차량 쪽을 계속 의식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혼자 모든 일을 정리하고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존재를 신경 쓰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량 안에서 나온 제3자의 깨진 안경도 수상하다. 가족도 처음 보는 안경이었고, 시력도 피해자 것과 달랐다고 한다. 이 안경 하나만으로 범행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누군가와의 접촉이나 충돌 가능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에 피해자가 사건 직전까지 돈을 받을 수 있다며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증언, 밀린 임금 정리까지 부탁했다는 주변 진술이 더해지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준비한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있다. 보험금을 노린 자살이라는 경찰 논리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반론이 여기서 나온다. 정말 가족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면, 받아야 할 돈이나 남은 채무 문제를 최소한 정리해두는 게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정리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오창 맨홀 변사 사건 현장(출처: SBS 방송 캡쳐)
    오창 맨홀 변사 사건 현장(출처: SBS 방송 캡쳐)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은 맨홀 안의 상황 자체다. 방송 재연 실험에서도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정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어두운 맨홀 안에 들어가 뚜껑을 닫고, 목을 맨 뒤, 손까지 뒤로 결박한 채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단순히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 그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던 셈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자살로 보기에도 너무 부자연스럽고, 타살로 보기에도 수법이 지나치게 기괴한 사건으로 남는다.

    오창 맨홀 변사사건(출처: SBS 방송 캡쳐)
    오창 맨홀 변사사건(출처: SBS 방송 캡쳐)

    결국 오창 맨홀 변사사건은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멈췄다. 경찰은 뚜렷한 타살 증거를 찾지 못했고, 유족은 자살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피해자가 만난 사람이 누구였는지, 왜 구두를 갈아신었는지, 깨진 안경의 주인은 누구인지, 꺼진 휴대전화와 비어 있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한 미제 사건이 아니라, 결정적인 단서들이 눈앞에 있는 듯하면서도 끝내 진실에 닿지 못한 한국 미스터리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 소름끼치는 대구 달성공원 요구르트 테러

    소름끼치는 대구 달성공원 요구르트 테러

    대구 달성공원은 오랫동안 시민들의 평범한 휴식처였다. 산책로를 걷고, 벤치에 앉아 쉬고, 동물원을 둘러보는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2004년 여름, 그 평범한 공원 한복판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벤치 위에 놓인 작은 요구르트가 사람을 쓰러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구 달성공원에서 지난 8월초부터 요구르트 독극물 사건이 발생한 지점
    대구 달성공원에서 지난 8월초부터 요구르트 독극물 사건이 발생한 지점

    사건은 하루아침에 터진 것이 아니었다. 2004년 8월 11일부터 약 한 달 동안 달성공원에서는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독극물 요구르트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피해자는 특정되지 않았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공원에 있던 누구라도 표적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독이 든 요구르트를 놓아두고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초반 대응은 허술했다. 피해자들이 구토와 실신 증세를 보였음에도 경찰은 이를 심각한 연쇄범죄로 보지 않았다. 사망자가 없다는 이유로 단순 식중독이나 개별 사고처럼 다뤘다. 그 사이 범행은 계속됐고, 결국 달성공원에서 4km가량 떨어진 두류공원으로까지 번졌다.

    구멍 뚫린 요구르트
    구멍 뚫린 요구르트

    치명적인 사건은 2004년 9월 19일 벌어졌다. 그날 오후 5시 40분쯤, 달성공원 물개 사육장 뒤편을 걷던 63세 노숙인 전모 씨는 벤치 위에 놓인 요구르트 3개를 발견했다. 포장도 뜯기지 않은 상태였다. 누가 봐도 별다를 것 없는 요구르트였다. 전씨는 무심코 그것을 마셨고, 곧 심한 복통과 구토에 시달렸다.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2시간 만에 숨졌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요구르트 마개에는 바늘구멍 흔적이 있었고, 누군가 주사기로 독성 물질을 주입한 정황이 확인됐다. 국과수 분석 결과, 그 안에는 원예용 살충제 성분인 메소밀이 들어 있었다. 즉, 이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준비한 독극물 테러였다.

    살충제 메소밀

    더 큰 문제는 이 죽음 이전에도 이미 같은 방식의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경찰은 전씨가 숨진 뒤에야 달성공원과 두류공원에서 비슷한 사건이 총 7건 발생했고, 1명이 숨지고 12명이 실신하거나 심한 구토 증세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사실을 본격적으로 파악했다. 이미 경고 신호는 충분했다. 그런데도 사건은 방치됐고, 결국 사람 한 명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수사가 확대됐다.

    경찰은 뒤늦게 메소밀을 다룰 만한 사람들, 농약 판매업소, 요구르트 제조사 관계자, 공원 용역업체, 주사기 판매업소까지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전단지 10만 장을 배포하고 보상금 2000만 원도 내걸었다. 피해자 진술 속에서는 의미 있는 단서도 나왔다. 한 70대 여성 피해자는 사건 직전 벤치에 앉아 있던 50대 남녀를 봤고, 이후 여성이 다시 혼자 나타나 요구르트를 마신 사실을 확인하곤 황급히 자리를 떴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키 160cm가량의 50대 여성을 유력 용의선상에 올렸지만, 끝내 신원을 특정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공원 내 CCTV도 부족했고, 목격자 진술 역시 구체성이 떨어졌다. 공개수사 전환 이후 80건의 제보가 접수됐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결국 수사는 몇 달간 이어졌지만 범인 검거에는 실패했다.

    농약 요구르트 사건일지
    농약 요구르트 사건일지

    이 사건이 더 섬뜩한 이유는 독극물의 위력 때문만이 아니다. 누가, 왜, 어떤 마음으로 시민들이 쉬는 공원 벤치에 독이 든 요구르트를 놓고 갔는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정인을 겨냥한 원한범죄인지, 사회에 대한 분풀이였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한 미제사건을 넘어, 일상 공간이 순식간에 공포의 현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불안 자체를 남겼다.

    사건이후 공원 곳곳에 붙은 유인물
    사건이후 공원 곳곳에 붙은 유인물

    그리고 12년이 지난 뒤, 경찰은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이 사건을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라고 표현했다. 범행 장소는 넓었고, 피해자는 불특정 다수였으며, 초동수사 시기를 놓친 탓에 남은 단서는 너무 적었다. 결국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대구를 대표하는 장기 미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달성공원 농약 요구르트 사건은 단순히 오래된 독극물 사건이 아니다. 누군가가 시민의 평온한 일상 속으로 조용히 독을 들여놓았고, 그 징후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막지 못했던 사건이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되고, 더 선명하게 소름 끼치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