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일본미제사건

  • 이노카시라 공원 평범한 밤에 벌어진 27토막의 진실

    이노카시라 공원 평범한 밤에 벌어진 27토막의 진실

    1994년 4월 23일, 도쿄 미타카시에 있는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믿기 힘든 사건이 하나 터진다. 사람들이 산책하고 데이트하던 그 공원에서, 한 남성의 시신이 27토막으로 잘린 채 발견된 거다.

    카와무라 세이치

    피해자는 당시 35세였던 1급 건축사, 카와무라 세이치.
    문제는 발견된 시신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체 신체의 3분의 1 정도만 나왔고, 머리와 몸 대부분은 끝내 찾지 못했다. 잔인함도 잔인함이지만, 사건은 결국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흘러갔고, 2009년 4월 23일. 정확히 15년 뒤,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게 된다.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그날 아침, 공원에서 일하던 한 청소부 여성이 쓰레기통을 뒤지다 비닐봉투 하나를 열어본다. 고양이 먹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봉투 안에서 나온 건 먹이가 아니라 사람의 발목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공원 전체 쓰레기통을 수색한다.
    결과는 더 끔찍했다. 총 7개의 쓰레기통에서, 27개로 절단된 손발과 몸통 일부가 담긴 비닐봉투들이 연이어 발견된다. 봉투에는 물이 빠지도록 작은 구멍이 나 있었고, 검은 비닐과 반투명 비닐을 이중으로 씌운 뒤, 어부들이 쓰는 방식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즉흥적으로 한 짓은 아니었다. 준비된 방식이었다.


    이노카시라공원토막살인

    손과 발의 지문은 거의 지워진 상태였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남아 있던 일부 지문과 DNA를 통해 피해자의 신원은 비교적 빠르게 밝혀진다. 공원 근처에 살던 1급 건축사, 카와무라 세이치였다. 사인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갈비뼈 근육 섬유에 출혈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게 살해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사후 훼손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는 끝내 단정하지 못했다.


    시신의 상태는 수사 관계자들조차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관절이나 장기를 고려한 절단이 아니었다. 전기톱 같은 도구로 길이 약 20cm 간격, 굵기까지 거의 일정하게 잘려 있었다. 이 길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공원 쓰레기통 투입구 크기, 가로 20cm 세로 30cm에 거의 맞아떨어졌다.

    또 하나 이상한 점.
    시신에서는 혈액이 거의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정도로 피를 빼려면 일반 가정집 욕실로는 부족하다. 급수와 배수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상당한 물의 양과 인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절단 방식도 한 가지가 아니었다.
    최소 세 가지 다른 패턴이 확인됐고, 이 점이 복수 범인설의 근거로 남는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실 하나.
    발견된 시신은 전체의 3분의 1뿐이었다. 나머지는 사건이 드러나기 전날인 22일에 이미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수거 차량에 실려 그대로 처리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노카시라공원토막살인

    피해자의 마지막 행적을 둘러싼 증언도 몇 가지 있었다.
    22일 자정 무렵, 지인과 헤어진 직후로 추정되는 시간대에, 피해자와 매우 닮은 남성이 JR 기치조지역 백화점 옆에서 젊은 남자 둘에게 집단으로 맞고 있었다는 목격담이 나온다.

    또 시신이 발견된 당일 새벽 4시쯤, 공원 안에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서성이는 남성 두 명을 봤다는 증언도 있었다. 둘 다 30대 정도로 보였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같은 시간대에 차와 사람이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정보도 있었다. 이 때문에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었고, 그 시신을 숨기기 위해 토막을 냈다는 사고사 은폐설도 나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황이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이노카시라공원토막살인

    언론은 사건 초기에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람을 토막 내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점, 장소가 공원이었다는 점 때문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건 발생 사흘 뒤인 4월 26일, 나고야 공항에서 중화항공 140편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 사망자 264명. 모든 언론의 시선은 단번에 그쪽으로 쏠렸고, 이노카시라 공원 사건은 급격히 지면에서 사라진다.

    11개월 후에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발생한다. 경시청 수사 1과 인력은 모두 그쪽으로 차출됐고, 이 사건 전담 수사본부는 해체된다. 이후에는 미타카 경찰서가 단독으로 사건을 맡게 됐고, 수사의 무게는 눈에 띄게 가벼워진다.

    주간지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피해자가 도쿄 다카이도의 한 종교시설에 다니고 있었고, 특정 종교단체와 연관돼 있다는 설이다. 하지만 다른 보도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확인된 사실은 없다. 소문만 남았다.


    그리고 공소시효가 끝난 뒤, 정확히 6년이 지나 새로운 증언이 등장한다.
    이 사건이 사실은 오인 살인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치조지에서 창고를 빌려 노점상들을 관리하던 남성 A. 피해자와 나이, 키, 체격, 얼굴까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던 인물이다. A는 외국인 노점상들과 구역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그들이 실은 노점상이 아니라 어느 나라의 공작원이었다는 주장이다.

    계획이 누설되면서 A는 오히려 그들에게 감시 대상이 됐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도쿄 시내 비즈니스 호텔을 전전하며 숨어 지내던 중 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피해자 카와무라의 집과 A의 창고는 가까웠고, A는 종종 카와무라로 오인받았다고 한다. 지인이 “닮았다”고 지적할 정도였다는 말도 덧붙여진다.

    즉, 원래 노려졌던 건 A였고, 카와무라 세이치는 잘못된 표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증언 역시 확인된 적은 없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결국 이 사건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동기도 확정되지 않았다. 남은 건 기록과 의문뿐이다. 그리고 조용한 공원 하나가, 지금도 이름만으로 사람을 서늘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